시인을 알면 알 수록 이 사람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그의 시는 늘 변해왔고, 하나의 시 세계라고 단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정지용의 부단히 변하는 시 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2-1. 초기 : 낭만주의 시 경향과 이미지즘시
이미지를 보여주는 카톨릭시즘에 경도된 종교시를 쓰고 있다. 『백록담』에서는 현실과 차단하여 무욕․지고의 경지인 (산)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① 바다의 이미지정지용의 시적 출발점은 바다에서 시작된다 문덕수, 「정지용론」 p.78
. 바다를 향해서 시인은 그의 상상력이 한껏 열려진다.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써졌다. 20년대 소월이 자아표출을 통하여 자기감정을 과다하게 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였다면, 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시 세계를
정지용에 의하여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 내는 시가 써졌다. 20년대 소월이 자아표출을 통하여 자기감정을 과다하게 노출한 감상적 낭만주의의 경향을 보였다면, 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시 세계를
시집’(24명)이었다.
시인별 득표수로는 ‘화사집’(60명), ‘서정주 시선’(8명), ‘귀촉도’(4명) ‘질마재 신화’(3명)를 순위에 올려 75명의 지지를 획득한 서정주가 1위, ‘정지용시집’(45명), ‘백록담’(20명) 등 총 65명의 지지를 얻은 정지용이 2위였다.
어떤 시대에, 어떤 세상에
1930년대의 구
시인의 실험이 아니다. 단조, 자유시, 산문시의 각 부분에서 그는 실험 이상의 성과를 거둔다.
2. 윤동주 혹은 순결한 젊음
윤동주는 초월적 세계에서 일제에 대한 극복 가능성을 발견하려 하지 않았고, 이육사에게서 보였던 주자주의적 엄숙주의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식민지 치하의 가난과 슬픔
Ⅰ。서론
정지용은 여러 모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시인이다. 특히 모더니즘을 받아들여 재생산을 해냈다는 점, 그리고 단순히 모더니즘을 도입한 것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서 특장점을 지닌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중, 정지용의 선
Ⅰ. 들어가는 말
1988년 1월 납ㆍ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정지용의 시는 우리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방 후 교육받은 세대의 경우 김영랑, 박목월은 알아도 정지용을 모르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정지용의 작품
시인도 아니며, 당대의 정지용처럼 이국정취에 취향을 보인 모더니즘의 시인도 아니며, 전통적인 리듬의 바탕 위에 인간의 순수 감정과 우리말의 정교한 아름다움을 탐구한 정통 시인이다. 영랑의 시적 비전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유미탐구에 있다. 초기 시에서 영랑은 ‘내 마름’, ‘소색이
시 형식에 담아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과제물에서는 월북작가 박태원과 정지용문학의 존재방식(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고, 북한문학사에서의 위상평가에 대해 서술하였다.
Ⅱ. 박태원과 정지용의 문학
1. 월북작가 박태원
1930년대는 식민지 조선에도 다양한 문예사조가 유입되어